텍스트큐브를 써보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엎어버렸다. 하는 김에 DB테이블도 정리하고, FTP로 쓰느라 어지러웠던 각종 쓸모없는 파일들도 정리했고... 세상에....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겨우 포스팅 11개라니... ㅡㅡ; 한 때는 1주일 동안 올리기도 했던 분량인데... 그래도 분발하겠다는 말은 못하겠고... 엎은 기념으로 새 글 포스팅!!! 사실은 포털 블로그도 같이 정리하면서 하나 들고 온 것임. (2006.5월의 기억)
연휴... 고향 무주(정확히는 무주에서도 한참 더 가야하는 두메산골)에 다녀왔습니다. 고향마을에서는 어버이날에 맞춰서 동네잔치를 합니다. 얼추 20년은 넘었나 봅니다. 70은 되어야 가슴에 꽃달고 어르신들 자리 말석이라도 차지할 수 있고, 주최하는 청년회(?)의 평균연령은 50대(심지어 60대도... -_-;), 한 가구당 한 명은 필히 참석해야하는 규칙이라 도리없이 참가해야 하는 30대의 저로서는 매우 뻘쭘한 잔치입니다. 기본적으로 1박2일(전야제부터 그담날 해질녘까지)동안 소주 4박스 정도는 비워야 하는 무시무시한 잔치이구요. 평소에는 잠시 허리를 피는 것도 버거워 하시는 할머님들이 너댓시간씩 꼿꼿하게 광란의 테크노를 즐기게 만드는(오!! 신이시여...) 기적의 잔치이기도 합니다. 옛 어르신들의 자식들 구성을 보자치면 가구당 독수리 오형제는 기본이어서 얼마나 많은 자식이 내려왔나에 따라 당신들 당일 목에 들어가는 힘의 정도에 차이를 나타내기에... 수에서 상당한 열세인 울 집으로선.... 도리없습니다. 가야합니다.
처음에는 동네 뒷산이나 가볍게 돌아볼 요령이었습니다. 길이... 없어졌더군요. -_-; 땅위에 드러난 소나무 뿌리들 타고 업힐 시도하다 시작하자마자 자빠링... 자전거는 꽃위에 눕고 저는 마른잔디 위에 누웠습니다. 없던 전의가 생기더니...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잠시나마 자전거는 산맥의 능선과 나란히 달립니다. 멀리 보이는 산맥은 계속 남쪽으로 달려 지리산에 이르고, 아마도 무등산까지 갈것입니다. 갑자기 무주리조트에 가고 싶어집니다... 갑자기 계획이란 게 생겨 버렸습니다.
나제통문입니다. 신라와 백제를 연결하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행정구역이지만 실제로 이 곳을 중심으로 언어와 문화가 확 바뀝니다. 자전거가 있는 쪽은 전라도 문화권, 반대쪽은 경상도 문화권입니다.
37번 국도입니다. 고속도로에서 무주리조트나 무주구천동으로 바로 연결되는 새로운 도로가 열린 후로 이 도로는 국도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차들의 통행량이 거의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차를 보면 반가울 지경이었는데, 연휴기간이어서인지 이번에는 그나마 몇 대 지나다니더군요.
A에서 B지점을 빠르게 연결하는 수단이 자동차라면, 자전거의 존재 의미는 A와 B 지점 그 사이에 있는 듯 합니다. 그 사이에서 자동차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눈으로 또는 향기로 느낄 수 있습니다.
벛나무 터널인 셈인데 꽃 대신 꽃이 돋았던 자리의 깍지가 비오듯이 쏟아지더군요.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업힐이 시작됩니다. 어렵사리 올라 한 구비 돌면 빡센 업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코스는 업힐 -> 빡센 업힐 -> 업힐 -> 빡센 업힐 되겠습니다. -_-;
지난 몇년에 거쳐 두차례의 큰 태풍(매미와 루사)이 이 동네를 지나갔습니다. 어른들은 살아생전 처음보는 최악의 태풍이라 했었지요. 모든 도로가 끊겼고, 모든 통신수단이 끊겼고,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상처는 계곡에도 남았습니다. 몇년이 지났지만 산이 토해낸 바위들과 토사로 계곡이 어지럽습니다.
허나 이게 낫습니다. 인간들이 복구한답시고 제방을 쌓고 둑옆으로 산책로를 만들고 한 자리는 복구 불능의 상태입니다. 더불어 그 많던 피라미와 모래무지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옛 추억 속의 정경은 요원해 보입니다. 제발 정치니 행정이니 하시는 분들... 일좀 하지 마십시요. 아니면 제대로나 하던지... -_-; 이런 곳들은 자연과 시간이 다 알아서 하는 곳들입니다.
산속은 고요해서 헉헉거리는 나의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들립니다. 비포장 길의 솔향기란... 페라가모의 향수와도 안바꿉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찔릴 분을 위한 한마디... "인칸토 돌려주셈. 나도 동굴생활 청산할 수 있으셈")
무주리조트까지 간 담에 곤돌라를 타고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 다운힐을 하자!!는 계획이 마눌님의 전화 한통으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올해도 쌀이랑 김장 얻어먹고 싶으면 빨랑 돌아와서 아버지랑 비닐하우스를 씌우라라는 요지였습니다. 몽롱한 무릉도원에서 현실로 돌아갈 때인가 봅니다. 그 전령은 011이 했습니다. 휴대폰을 없앨까 심각하게 고민이 됩니다.
계획변경되어 목적지가 되어버린 곳... 수성대라 합니다. 깎아지른듯 한 절벽과 소, 느티나무, 나름대로 구름다리도 있습니다.(성수기에 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막아뒀더군요.) 관람객?... 없습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란(연령대에 상관없이 대부분 커플)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물은 상당히 깊습니다. 30년 전에 들어가셔서 아직 안나오신 분도 계십니다. 특히 술먹고 들어가시지는 마시기 바라며... 어디서건 매뉴얼만 준수하시면 올 여름도 무탈하시리라 믿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갈 시간!! 그나마 위안은 이제부터는 다운힐 시작입니다. 인생은 정직한 겁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토끼랑 놀고 있던 딸(4살)이 반겨줍니다. 저말고...자전거요....OTL
"네 이놈!! 배변 가리고,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만 있게 되면 진정한 하드트레이닝이 뭐지 보여주마. 아빠의 교육철학은............방목이다. 넌... 딱 걸린거야"
초널럴 울트라 관광 라이딩 소요시간 2시간 30분, 주행거리 50Km... 이번 홀로라이딩의 결론은 "전립선 안장을 사야겠다... -_-;" 결국 이번 라이딩도 그 분과 함께 했던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