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생겼다. 대회참가를 목적으로 한 정식축구부라기 보다는 달랑 코치 한 분이 축구를 가르치는 말하자면 좀 더 재밌게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인 요즘의 유소년 축구클럽에 더 닮아있는 모임이었다. 하지만 선발기준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어서 당시 하위 10%의 체격조건을 가진 나로서는... 참가할 수가 없.었.다. ㅠㅠ 허나 전교회장이라는 지위의 남용(세상 다 그런거지!!)과 울고불고 떼쓰기 작전으로 나는 축구부 입성에 성공한다. (물론 1년 동안 후반 교체출전 1회라는 기록만을 남기고 나머지 시간은 주전자만 열심히 날랐다.) 축구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팀자체가 변변한 유니폼도 당연히 없었고, 좀 사는 집안의 아이들이나 상표있는 운동화를 신을 수 있었던, 그 비율만큼 고무신 신는 아이도 있었던 시절... 어쩌면 내가 원했던 건 축구라기보다는 조직의 테두리 안에에 소속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때 축구화라는 걸 처음 봤다. 코치가 신고 있던 까만 축구화...
1982년 스페인월드컵이 있었다.(우리나라는 참석을 못했다) 참가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된 첫 대회였는데 4개국 6조로 나뉘어 1차예선을 하고 상위 1,2위 팀 12개국이 3개국 4조로 나뉘어 다시 2차예선을 해서 각 조 1위팀만 4강에 진출하는 다소 복잡한 규칙을 가진 대회였다.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죽음의 조가 이 대회에서 나왔는데, 브라질, 이탈리아, 아르헨티나가 2차예선 한조에 편성된 것이다. (파울로 로시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 -그 대회 득점왕- 를 보유했던 이탈리아가 예선에서 살아남았고 결국 우승까지 한다) 이 3개국은 물론 준우승팀 독일(당시 서독)과 프랑스 등등 대회에 참가한 거의 모든 선수들은 까만색의 삼선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이듬해 부상에서 돌아온 차범근이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며 승승장구 할때 그의 발에도 어김없이 이 축구화가 있었다. 브랜드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때이라 축구화란 까만색에 흰선이 그어져 있어야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이 때부터 그 까만색 삼선 축구화는 나에게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로 자리잡게 된다. 이 축구화가 아디다스의 코파문디알이라는 제품이며, 1982년 여름, 스페인 월드컵에 맟춰 출시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로 십수년이 지나야 했다.
20세기 마케팅의 키워드가 ‘니즈(needs)’라면 21세기의 키워드는 ‘원츠(wants)’라 했던가!! 고전경제학 원리에 따르면 구두가 이미 여러 개 있는 사람이 새로운 구두를 선물로 받는 경우,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새 구두의 효용이 크지 않아야 한다. 허나 정말 멋진 구두를 선물받게 되면, 기존 구두와 상관없이 더 갖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이것이 ‘원츠(wants)’이고 현대 소비경제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라 설명하고 있다. 질러라!! 소비는 실존일지니.... 호모 콘소마투스(Homo Consomatus-소비의 인간)는 자본주의 경제하 시민의 본질일지니!! 그래서 축구화를 수집하는 축구화덕후라는 게 생기는 것이겠지!!
2008년 여름...축구화가 망가졌다. 이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됬다. ‘기능적 효용’에 초점을 만춘 니즈(needs) 충족성 소비를 해야하는가? ‘비기능적 욕구’에 초점을 맞춘 원츠(wants) 충족 소비를 할 것인가? 축구화의 발전은 놀라워서 최고로 치는 캥거루가죽이나 그에 못지 않는 합성소재, 텅스텐가루 삽입, 텅(축구화 끈을 덮는 부분)과 외피의 일체화, 교체가능 스터드(뽕이라 불리는 바닥돌기), 공의 반발력과 회전력을 높이기 위한 소재와 디자인 등등 비록 공을 차지 않더라도 지갑을 열게 만들 제품이 수두룩하다. 15분 운동 45분 휴식을 주장하는 저질체력의 소유자로선 명품축구화 대신 각 브랜드의 보급형이나 국산 키카 브랜드도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쓰던 축구화를 수선하고 창갈이해서 쓰는 것일 터이고....
허나... 결국.... 새 축구화... 그것도 어릴적부터 동경하던 코파문디알을 질.렀.다. 이쁜 건 어쩔 수 없는 거다...ㅡㅡ; 1982년 만들어진 이 축구화는 음... 축구화계의 조용필이랄까? 작년에 발매 25주년 기념판이 나왔고, 올해는 26주년을 맞았다. 전체에 캥거루 가죽을 사용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디다스 축구화 브랜드의 상징적인 제품이라...이 제품군만큼은 독일에서 직접 만든다. 동남아에서 만드는 코파문디알 팀이라는 시리즈도 있고(주의 요망), 스터드 등을 손봐서 천연잔디용으로 출시한 월드컵 시리즈, 디자인의 원형은 그대로 두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디퓨어 시리즈도 아류라 볼 수 있다. 지지팀이 아니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성남의 모따가 즐겨신는다고도 한다.
20년 이상 동경했으면 한번쯤 질러줘도 되지 않을까!! 이제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